주인놈을 고발한다. - '바리'의 슬픔, 250206, 나나영초
내이름은 바리다.
한마디로 내 주인놈은 지 밖에 모르는 놈이다.
잘못 걸렸다. 내가 전생에 큰 죄를 저질렀거나, 태어나기전 제비뽑기를 잘못 해서 이딴 놈을 주인으로 만나 개고생이다.
개들에겐 미안하지만...
*** 개 표현은 진짜 개(犬) 를 지칭한 것
그렇다고 늘 힘들었던 건 아니다. 추억을 꺼내보면 때론 주인놈이 바쁠 땐 많이 이용되지 않기도 했었다. 그때는 좀 살맛 났다. 그런데 주인이라는 놈이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허구헌날 운동질이다. 운동을 하면 나를 이용 안할 수가 없다.
내 입장에선 운동 중에 수영과 싸이클은 그나마 좀 낫다. 헬쓰도 괜찮다. 나를 이용하지만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 이름은 바리라 했다. 주인놈은 나나영초다.
이제부터 주인놈이 바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고자 한다.
20년전 1억mm 뛴다고 미친짓을 두번이나 했다.
난 그때 정말 죽고 싶었다.
인생의 고통이 이런것이라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족저 근막염까지 왔었으니 힘들지 않았겠는가? 다른 주인들은 10km도 안 뛰던데...
그나마 고마웠던 것은 런닝화는 자주 샀다.
사실 나를 위해 산 것도 아니지만 운동화라도 자주 교체해 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놈 때문에 내 동료인 무르비, 파리, 회전그니가 심하게 다쳤었던 적이 있었다. 싸이클 타다가 넘어졌었다. 잘 타지도 못하면서 탄다고 밤 중에 나가더니 아주 멋지게 다쳤다.
무르비는 무릎 바깥쪽이 다 갈려 나갔고, 파리는 12바늘이나 꿰맸다. 회전그니는 이놈이 조치도 안하고 참고 지내는 바람에 몇년 후 어깨에서 목으로 말려 올라가게 되었다. 회전그니가 아프다고 하니 잠깐 병원 갔다가 오더니 급기야 새벽에 통증이 심해지자 그때 병원가서 어깨에 못을 2개나 박아 해결했다. 이제 주인놈은 인조인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때 동료들이 힘들었지 한동안 나는 편했다. 출근도 못하고 병원에 있었으니 덕분에 푹 쉴 수가 있었다.
이것 뿐인가?
나는 이것까지는 봐줄 수 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젊을 때니까. 그런데 지금은 퇴직하고서도 운동과 산에 다닌다고 난리다.
옛날처럼 운동을 많이 못하면서 작년 더운 날 하프코스를 달린 것이다. 그래도 풀코스에서 하프코스로 변경되어 조금은 나았지만 땀과 물이 발쪽으로 내려가 운동화가 푹 젖었다. 젖은 상태로 철벅거리며 달려야 했다. 완주 후 나는 불어터져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등산 초기 때다. 처음엔 볼이 넓은 등산화를 신어서 내 발가락을 까맣게 만들었다. 등산화를 구매할 때는 발의 볼도 신경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산 때 등산화 안에서 발이 등산화 끝에 밀려가 발톱 아래가 까맣게 피멍든다. 우리는 이것을 발이 죽는다고 표현한다. 그니까 이 주인놈은 발가락을 죽이기도 했다. 이 것은 엄연한 부분살인 행위다. 물론 다시 살리긴 했지만...
진짜 참을 수 없는 건 지금 이 겨울에 눈 내린 산을 가며 등산화를 적시는 것이다. 겨울날 등산화가 젖으면 나는 한기로 저체온증이 와 인사불성이 될 수도 있다. 강력하게 어필 했더니 그제서야 태백산 눈산행에서 비닐을 씌우고 등산했다. 꼭 말을 해야만 그때서야 조치한다.
이상한 놈이다. 꼭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운동외에도 이 주인놈은 이 겨울에 구멍 숭숭 뚫린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걸 즐겨한다. 그러다 보니 외출시에는 항상 춥다. 집에 오면 저릴정도다. 그니까 나는 주인놈이 아파서 집안에 갇혔을 때가 참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아 ~ 고발장에 잊어버릴뻔 했다. 이 주인놈은 잘 때 겨울이나 여름이나 발을 내놓고 잔다. 이불을 덮지 않는다. 여름엔 모기에게 뜯기고, 겨울엔 아침에 일어나면 얼기 직전이다. 주인놈은 진짜 진짜 신비스런 놈이다.
*** 모기 기승 이야기 : 모기, 최후의 전쟁 ... 241116, 나나영초
주인놈아 적당히 좀 하자..
주인놈하고 합의를 봤다. 겨울 운동화를 바꾸고, 잘 때 나도 이불 안에 넣어 주는 것으로...
그런데 합의사항이 지켜질까?
믿어? 말아?
*** 나나영초는 '바리(발)'를 혹사 시킨적이 없다고 한다. 발을 쓰고 잠시 아픈 적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무일 없다며...
※ 나나영초 땜에 고생하는 발을 의인화 해 위로했다. 힘들겠지만 함께 헤쳐나가자는 마음으로...
그래서 인생은 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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