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울트라마라톤대회 참가 했을 때를 추억해본다. 16년 전이다.
2000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고 6년째만에 100km 세 번째 도전이다. 첫 번째는 서바이벌 대회인 강화울트라 마라톤대회였다.
그때 35km지점에서 포기했다. 전날 숙직근무 후 다음날 참가해 컨디션 난조였다.
두번째가 오전에 출발하는 서울 울트라마라톤 대회였다. 간신히 완주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달리는 대회다. 당시의 느낌을 가지고 추억을 남겨본다. 추억하는데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다. (마지막에 있는 대회 골인점 사진을 잘랐다.)
** 포토로에서 촬영한 것으로 당시 스포츠사진 전문회사
[대회 전]
대회가 다가올수록 완주에 대한 두려움이 시작되었다.
요즘 울트라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작년 한번 100km, 65km 완주한 적이 있어 울트라라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업무 핑계로 연습을 게을리 해서다. 대회가 곧 연습이었던 것이다.
금년 2월부터 4월 까지 장거리 하프코스(21km)이상 총 6회(풀코스 3회 21,30,32km 각 1회)만 달렸을 뿐이다. 평소 연습량이 없어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사진은 2006년 4월 경향마라톤 대회)
** 아이미디어는 당시 스포츠사진 전문회사
[출발 전]
초행길인 경기도 광주 우산청소년 야영장에 오후 3시쯤 도착하니 운영본부에서 대회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청소년 야영장답게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이 많았다. 주차를 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에 대회본부를 들러보았다. 아직 참가자들의 모습은 한산했다. 번호표와 기념품을 받아 들자 가슴이 또 떨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완주를 할 수나 있을까. 달리다 퍼지면 어떡하나. 내 머릿속에선 연습안한 핑계거리 찾기에 바빴다. 준비가 부족했던 날들이 후회되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장비를 점검하고 간단히 쵸코파이와 물로 배를 약간 채웠다. 그리고 차안에서 잠을 청했다. 물론 잠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쉬었다.
5시쯤 일어나서 울트라장비를 챙기고 아래 대회장으로 갔다. 이제 참가자들과 가족 그리고 동호회원들이 많이 보였다. 가족까지 따라와서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부럽기도 했다. 스트레칭을 장시간 다함께 하고 출발준비를 했다. 이제 출발신호만 기다린다. 완주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그런지 떨림이 더욱 심해진다. 쿵쾅 쿵쾅.
(사진은 2006년 4월 경향마라톤 대회)
[드디어 출발]
오후 6시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떨린 마음을 부여잡고 초반 내리막길을 달려 나갔다. 날이 환해 길 가던 주민들과 차안에 있는 사람들이 파이팅을 외쳐준다.
길 가던 주민이 말을 건다. 얼마나 뛰느냐고.
100km라고 했더니 눈이 커지면서 아무 말을 못한다. 천천히 간다고 생각했는데 초반 5km 정도가 내리막길이어서 그런지 조금 빨리 달렸다. 도로 교차로를 통과할 때는 자원 봉사자의 안내로 멈추거나 속력을 늦추지 않고 갈 수 있었다.
10km기록이 56분정도다. 예상보다 빠르다. 70분정도 예상했는데 초반 내리막길 때문인 것 같다. 이후 언덕길과 내리막길, 그리고 마을을 몇 개 지났다. 20여km 쯤 달렸을 것이다.
다리에 힘이 아직은 남아선지 완주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가고 재미 있어진다. 동호회원들끼리 함께 무리지어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달린다. 부러웠다. (사진은 lig대회 풀코스 골인점, 포토로)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발한지 2시간 30분정도(오후 8시30분경)되자 자연의 이치를 부인하지 않고 소리 소문없이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앞등과 뒤 깜빡이 등을 켰다. 앞서 달리는 달리미들의 불빛 행렬이 어둠속에서 반짝거린다. 그야 말로 장관이다. 이제 그 불빛을 보며 달려야 한다.
마을에 도착하면 내 착각이지만 지나치는 울트라 달리미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개 짖는 소리가 그때마다 요란하게 들렸으며, 가까이에서 들릴 땐 어디선가 갑자기 달려 들까봐 무섭기도 했다.
논 부근을 지나칠 때면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합창으로 응원을 해주며 어둔 밤의 적막감을 달래주었다.
24.2km지점 1PP에 도착했다. 여기서 물을 급수하고 체크를 한다. 그런데 벌써 포기하는 달리미가 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여기서 포기할까 생각해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앞으로 달려야 할 75.8km는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포기할 수 있는 용기에 내 마음속의 찬사를 보낸다. (사진은 65km대회 사진임. 김현우작, 왼쪽 주황색 상의가 필자)
[처녀귀신이라도]
지금이 몇 km지점일까 어둠이 시작된 후 앞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도로가 언덕이 많았으며 또한 굽이굽이 굽어져 나와 같이 달리던 달리미들이 또는 내 뒤에 있던 달리미들이 나를 추월하여 저 멀리 가버리면 안보인다. 앞 달리미들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앞은 캄캄할 뿐이다.
새카만 어둠속에서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왕 귀신이 나올거라면 처녀귀신이 나와주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뉴스거리로 “처녀귀신을 만난사람”이라고 매스콤을 탈 수 있을텐데. (사진은 2004년 8월 분당 동아시아 50km대회 모습)
[항금삼거리의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반환점까지]
이제 지쳐오기 시작한다. 33km지점. 66km주자들의 반환점이다. 벌써 지쳐버린 내 육신은 항금삼거리의 자원봉사자가 주는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힘을 되찾아본다. 평소 먹지 않던 사탕도 한 개 입에 넣었다. 아 그런데 속이 매스껍다. 아마도 평소 즐기지 않던 쵸코파이를 달리기전에 두개나 먹어서 그런가 보다. 장거리달리기엔 기호에 맞는 음식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이제 2km가까이 되는 저 놈의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이 대회는 고개가 유난히 많고 이 부분이 최고의 난코스이기도 하다. 걸어서 가야한다. 이곳을 뛰어넘다간 완주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자 힘을 내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처음 어둠이 왔을 땐 달빛이 보였건만 이제 달은 보이지 않고 별이 몇 개만 보인다. 드디어 마의 고개를 넘어섰다.
15km만 가면 반환점이다. 산 밑에 있는 마을을 지나 45km지점을 넘어서자 잠시 후 모텔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나타났다. 이곳이 풀코스 42.195km를 넘어선 45km지점.
이 순간에는 계속 나타나는 모텔들이 고마웠다. 불을 밝혀 잠시나마 지루함을 잊게 해주었다. 어디쯤일까 이미 반환점을 돌아오는 달리미들이 반환점에 거의 다 왔다고 힘내라고 힘을 외쳐준다. 그래 다 온 것 같다. 힘내자. 아자 아자 힘.
[반환점에서]
고개를 넘고 또 넘자 멀리서 교평리 반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길게만 느껴졌었던 반환점 5천만mm(50km)지점의 불빛이 보였다. 마지막 안간힘을 써 오르막길 고개를 가자 그곳에는 이미 도착한 달리미들과 도우미들이 있었다. 배번 체크를 했다. 약 6시간여 만에 도착한 것이다.
준비된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나의 열기를 씻겨준다. 속이 좋지 않지만 식사를 했다. 식사 중에 한 달리미가 지금까지 오신 분들은 완주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번 대회 컷오프시간이 16시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15시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변경이 된 것이다.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1시간을 번 것이다. 조금 더 천천히 가도 여유가 있다는 그런생각. 원래 15시간인데 이 대회는 탈락자가 많아 늦춘 모양이다. 물론 코스도 생각해야 한다. 코스의 어려움은 이번 대회인 천진암 울트라마라톤대회가 대표적인 곳이다. 그럼 좀 더 여유있게 가도 될 것 같다. 내 입가에는 벌써부터 완주의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얼음물로 양말을 벗고 발을 씻었다. 이 시원함을 경험하지 않고 누가 알겠는가.
양말과 상의를 갈아입고 나머지 반 50km를 가기위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스트레칭도 쉽지가 않았다. 연습부족을 스스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했다.
[졸면서 자면서]
반환점에서 여유롭게 쉬고나서 “골인점에서 봅시다”란 말을 남기고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언덕을 몇 개 넘고 아까 지나쳤던 모텔촌을 한참동안 달리다가 모텔촌 끝부분에 있는 24시간코너에서 사이다를 한 모금 사 마셨다. 출발부터 더부룩했던 배가 시원해지지 않는다.
어느 한 달리미가 배번에 있는 내 이름을 보더니 작년 참가수기를 올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참가수기를 이렇게 꼼꼼이 읽어주는 분도 있구나. 그저 감사했다. 여유있게 쉬고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60km지점이다. 모텔촌을 지나 밭 주변을 달렸다. 물론 어두워서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가장 고난도의 고개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차라리 고개가 좋다. 걸어가면 되니까. 헉 그런데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나 자신에게 졸지말자라고 최면을 걸지만 “인체의 신비“ 앞에선 최면이고 뭐고 없다. 그저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되는 것 밖에는. 산을 통째로 넘는데 졸음은 가시지 않는다. 그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다리만 움직일 뿐이다. 지금이 새벽 3시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졸릴 만도 하다. 어쩌면 순간 순간 자면서 가고 있는지도...
군대 야간 행군때가 생각났다. 졸면서 걷던 때.. 지금은 단지 뛸 뿐이다. 가장 난코스인 항금삼거리까지 거의 졸면서 내려왔다. 항금 삼거리 67km지점. 이제 33km남았다. 잠시 쉬면서 이제 걸어도 완주할 수 있는지 시간을 따져보았다. 계속 걸으면 완주하기엔 자신없는 시간이다. 일단 뛰어야 한다. 정말 못 뛸 때까지 달린 다음 걸을 것인지는 그때 가봐야겠다. 자 달리자.
[원초적 본능]
밤새 울어 제끼던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는 어디 갔는지 논을 지나쳐도 그저 몇 마리의 맹꽁이소리만 들린다. 그들도 이제 지쳐 잠자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안자고 울어 제끼는 놈들은 뭔가. 나 같은 놈인가. 나도 자고 싶다. 자연의 순리와 인체의 신비에 순응하고 싶다. 시간이 되면 자고 그리고 일어나고 하는 것. 그것은 “원초적 본능”이다.
원초적 본능을 거스른 사람들이 여기 모여 달리고 있다. 이 시간 잠 안자고 우는 개구리처럼.
[싱그런 아침의 공간]
서서히 밝아오는 남한강의 아름다움을 느낀 시간은 새벽 4시44분경이었다.
두물머리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모습. 태초 모습속의 나를 그려본다.
세상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때. 조물주가 이것저것 만들어 세상은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을때.
나는 그 당시에 이렇게 당당하게 서 있다. 생각만 해도 아담과 이브의 동산이 부럽지 않다. 다시 눈을 떠 현실로 돌아왔다. 아이구 다리야!!!
뻐꾸기와 그 외 새소리가 싱그런 아침을 내 가슴속에 안겨주고 있다. 몸은 힘들어도 내 가슴만은 행복감에 잔뜩 젖어든다.
[대체 울트라가 뭐길래]
나와 함께 걷던 의정부클럽 달리미가 전화를 받는다. 함께 참가한 여성달리미가 앞서 달리다 무릎이 아파 더 이상 못가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와 함께 계속 걷다가 여성 달리미와 만나고 나는 그때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다리야.
나도 정상이 아니다. 발등부터 발목 장딴지, 허벅지, 골반(엉덩이), 허리근육들이 못 가게 뒤에서 잡아당기고 있다. 으아 정말로 힘들다. 고지가 저긴데 나는 가야만 한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누구처럼 겨레를 위한 일은 아니지만 가야한다.
[재밌다니?]
95km지점, 약 5km 남았다.
나보다 앞서 달리다 쉬고 있는 달리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그가 준 쵸코릿을 먹었다. 막판 힘이 난다. 마음만은.
그에게 물었다. 왜 이 힘든 걸 달려요? 그러자 그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힘듬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그. 진정한 울트라맨이 아닌가 싶다. 다시 출발했다.
내가 힘들어 천천히 걷다 쉬다 하는 동안 무릎 아프다던 의정부 여성 달리미와 클럽동료가 나를 지나쳐 간다. 빠른 속보로 걷고 있다. 아파 울면서 달리는 울트라우먼. 저렇게까지 가야하는가. 그녀는 물론 가야하기에 가고 있는 것이다.
남은 거리가 5km 이내지만 멀게만 느껴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다. 마침내 골인점 언덕이 보인다.
[100km를 무사히 밟았다]
드뎌 골인 그냥 앞으로 쓰러져 쉬고 싶었다. 피곤함 자체가 사진에 보인다.
자연과 함께한 이번대회는 울면서 완주한 “울트라우먼”도 지금은 완주의 가슴 벅참을 느끼며 행복감에 젖어 있을 것이다.
그 만큼 힘들었기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완주의 기쁨과 행복을 모를 수밖에 없다. 그 힘듬이 있었기에 완주의 기쁨과 행복은 그 만큼 커지는 것을.
100km를 무사히 밟았다. 간신히 컷오프 16시간 이내에... 15시간 43분만에.
* 여기에 게시된 사진은 천진암 100km와 관련없는 타 대회 사진으로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분위기 맞춰 올렸습니다.
** 마지막 골인점 사진만 천진암 100km 사진입니다.
*** 혹시 저작권에 위배된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시 확인 조치 하겠습니다....
'나의 운동(헤엄,잔구,뜀박질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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