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등 내 인생 특히 기억나는 것들
10년전 엄청 아픈 추억 : 당분간 운동을 접어야 했던..141110 나나영초
나나영초(nanayeongcho)
2024. 9. 9. 01:24
10년전 엄청 아픈 추억 : 당분간 운동을 접어야 했던..141110 나나영초
아픈 추억은 누구나 있으리라. 요즘 주변에서 아픈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10년전 일이 떠 올랐다. 수개월동안 어깨가 못 견디도록 아파 새벽잠을 설치곤 했었다.
못 참겠어서 병원을 찾았고 MRI 검사결과 회전근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어깨가 다친 건 2007년 싸이클 낙차였다.
아쉬운 건 2007년 당시 정밀검사를 받았어야 했다. 응급실 의사 말만 믿고 정밀검사를 받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7년의 세월이 흘러 결국 어깨 인대는 떨어져 나갔다.
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아프면 곧바로 정밀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 사고 경위 >
2007년 5월이었다. 당시 프라하 마라톤 대회를 마치고 귀국 후 트라이애슬론(삼종)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밤에 싸이클을 타러 나갔었다. 중랑천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데 MTB가 나나영초를 앞질러 가는 것이다. 물론 잘타면 충분히 싸이클을 추월할 수 있다. 그땐 왠지 자존심이 상해 기어를 올리고 마구 밟아댔다. 추월하고 나니 기분이 으쓱 해졌다.
그 순간 중심이 흔들렸고 중심잡기에 실패하며 왼쪽으로 넘어졌다. 헬멧이 금이 갈 정도의 충격이 있었으며, 왼쪽 무릎 바깥은 까이고 왼쪽 팔은 12바늘을 꿰매야 했다. 어깨 또한 아팠으나 팔다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응급실 의사 왈 '분명 어깨 인대에 손상이 있을 것이다. 심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이 된다.' 라고 했다. 결국 환자가 판단했어야 했다. '심하지 않으면'이란 전제를 심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본인 나나영초의 잘못이다.
이런 상태에서 7년을 수영과 싸이클을 계속 해왔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병원은 가기 싫지만 나이들수록 친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을 못잘 정도로 아프니 서먹서먹 한 곳이지만 어쩌랴..
요즘 말 많은 조영제 주사를 어깨에 맞고 MRI를 촬영, 꼼짝않고 갖은 기계음과 맞서며 버티기를 30여분, 마치고 나니 홀가분 했다. 이제 결과만 나오면 된다.
결과는 7년전 싸이클 타다 심하게 넘어질 때 인대손상이 많았고, 7년동안 서서히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나영초는 인대가 어깨에서 떨어져 나갔다.
인대는 다시 접착할 수 없다고 하니 수술을 통해 핀을 박고 실을 연결해 말려 올라간 인대를 잡아당겨 묶어야 한다고 한다.
관건은 그렇게 해서 어깨가 괜찮다는 것에 확신이 서야 했다. 당시 사무실 업무가 바쁜 시기였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 중요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일단 수술날짜를 잡았다. 어반애슬론(장애물 있는 달리기)대회를 마친 다음날 병원에 입원하고 그 다음날 수술하기로 했다.
< 사전 훈련과 대회 참여 후 어깨 수술전 >
사진은 어반애슬론 대회 대비 연습차 광주에서 올라온 진오씨(오른쪽)와 도와준 여행씨(왼쪽)와 함께 훈련 후 찍었다. 이때는 어깨 시술 날짜가 결정되지 않았었다.
어반애슬론 완주 후 진오씨가 찍어주었다. 다음날 어깨수술을 해야하는 아픈 어깨로 장애물을 잡으려하니 많이 힘들었다.
어반애슬론 대회 다음날 병원에 입원했다. 왼손등에 간호사가 OP라 적었다. 수술할 어깨라는 표시같다.
내일 수술을 앞두고 어떤 책을 보고 있지만 제목이 기억 나지 않는다.
< 시술 후 >
수술하고 나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는데 통증이 심했다. 내가 엄살이 심한 걸까. 잠 못드는 날도 있었으니 엄살만은 아닌 듯 하다. 남들은 어떻게 이 고통을 참을까. 나는 못을 박아 더 아픈 걸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답답하다..
심한 통증으로 딱 한 번 수면제에 의지하여 잠든 것을 제외하곤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 늦은 밤 복도를 자주 돌아다녔는데 전동휠체어를 탄 채 몸을 똑바로 세우고 고개는 숙인 상태로 잠든 환자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꼭 그렇게 잠을 잔다는 것이다. 이분은 침대에 누워 잘 수가 없다고 한다.
입원실에서는 수술 후 통증을 견디며 안읽던 책을 읽고 있는데 바로 옆 환자의 간병인과 그 앞 간병인이 몇시간씩 잡담을 하곤했다. 견딜 수 없어 '조용히 해 달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때 뿐, 이튿날 또 주의를 주어야 했다. 결국 못견딘 내가 병실을 옮김으로서 해결되었다.
시술 부위가 궁금했다. 전부 네곳 구멍이 뚫렸었다. 두개인 줄로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항의할 수도 없고..
여행씨가 어떻게 알고 병문안 왔다. 페북에 올린 것 뿐인데 환자복을 보고 병원을 알았다는 것이다. 넘넘 감사하다.
이 때가 퇴원하는 날인 것 같다. 지금은 눈이 좋아져 안경을 안쓴다.(눈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귀찮아선 지) 베게를 옆구리에 끼고 다녀야 한다.
< 퇴원 후 활동 >
밖을 나올 때의 모습이다. 진짜 이렇게 다녀야 하나..
사진은 모구청에서 강의하는 모습이다. 이때 거절할까 했지만 담당팀장이 강력하게 요구해 하게 되었다. 보조기를 차고 있지 않다. 강의를 위해서 보조기를 제거했다. 왼쪽팔이 불편 했다.
출근할 때의 모습이다. 만원전철을 탈 때가 가장 불편했다. 시민들이 이 모습을 보고 비켜 주기도 했다. 감사했다.
절친들이 송년회 후 당구를 치는 모습이다. 물론 나나영초는 칠 수 없었다. 다시는 다치지 말자라는 심정이다.
약 2년 정도가 지나서야 괜찮아졌다. 아팠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지금은 수영도 하며 싸이클도 타며 달리기도 하며 산행도 한다. 어깨가 다 나았고 힘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늘 조심하고 있다. 이렇게 한 번 다치고 나니 싸이클 탈 때 조심성이 커졌다.
스트레칭은 아침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어 운동할 때마다 계속된다. 내가 부족한 것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관절과 근육의 부드러움, 곧 탄력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건강을 위한 생활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건강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하려한다.
그래서 다치지 않도록 싸이클을 조심히 탄다. 아프니까 진짜 불편하고 힘들었다.